A.Y.A.D.
진단메이커 - '모두가 거짓말을 해', 키워드는 낯설음, 조용한 느낌 -반가워.나직한 목소리가, 새하얀 숨결과 함께 흘러나왔다. 차가운 날이었다. 옷이 미처 보호해주지 못한 맨살은 꼭 얼음에 문지르는 것 같은 감각에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추위에 창백하게 질린 피부 위로 코끝과 볼만이 꼭 물감을 뿌린 듯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망토도 없는, 얇은 코스튬 하나로 버티기엔 퍽이나 무리인 날씨였다. 제이슨은 그런 딕을 보며, 굳이 추워보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뒹굴었던 날들 중에는 눈이 종아리까지 쌓인 날도 있었다. 그날도 그가 입은 옷은 오늘과 똑같았다. 그러니 제이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거기다 그 역시, 외투랍시고 걸친 건 낡은 가죽자켓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제이슨은 말없이 들고 있던..
-눈이다.데미안이 중얼거렸다.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낮게 숨죽인 목소리에는 작은 경탄이 묻어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것에 대한 신기함, 한없이 아름답고 연약한 것에게 드는 조심스러움이 녹아난 목소리였다. 그의 동그란 파란 눈동자는 허공 위를 떠다니는 작은 눈조각을 바쁘게 쫓아다녔다. 그러고보니 데미안은 사막에서 왔었지. 딕은 새삼스레 데미안의 고향을 상기했다. 뜨겁고 메마른 모래바람이 부는 곳에서 차갑고 축축한 눈이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딕은 처음으로 눈을 맞이하는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빙그레 웃으며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매끄럽고 단단한 유리창에 데미안은 얼굴을 붙이다시피 가까이 댔다. 어두운 진회색 하늘 아래로, 새하얀 눈송이들이 마치 춤을 추듯 너울거렸다. 데미안이 중얼..
너는 하얗게 웃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둥글게 휘어지는 눈매에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너는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너의 목소리는 반가움에 약간 들뜬 어조였다. 너의 걸음걸이는 망설임이라곤 없었고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을 껴안는 너의 행동에 나는 조금 당황해버렸더랬다. 못본 사이에 이렇게 키가 컸네? 금새 날 따라잡겠는걸?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너의 손이, 목에 와닿던 너의 체온이 사실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간질거려서 견딜수가 없었다고 말한다면, 너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나는 애써 너의 몸을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의 몸은 아직 너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늘었기에, 너는 나의 거부하는 몸짓도 그저 장난처럼 여기고 껴안았다. 너의 체온은 따뜻하고 뜨거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