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D.

[딕슨딕]의미불명 단문 본문

글연성/DC

[딕슨딕]의미불명 단문

DayaCat 2013. 12. 10. 21:59

너는 하얗게 웃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둥글게 휘어지는 눈매에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너는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너의 목소리는 반가움에 약간 들뜬 어조였다. 너의 걸음걸이는 망설임이라곤 없었고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을 껴안는 너의 행동에 나는 조금 당황해버렸더랬다. 못본 사이에 이렇게 키가 컸네? 금새 날 따라잡겠는걸?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너의 손이, 목에 와닿던 너의 체온이 사실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간질거려서 견딜수가 없었다고 말한다면, 너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나는 애써 너의 몸을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의 몸은 아직 너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늘었기에, 너는 나의 거부하는 몸짓도 그저 장난처럼 여기고 껴안았다. 너의 체온은 따뜻하고 뜨거워서 어쩐지 내 몸도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심장이 간지러워지다 못해 아파오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심장박동은 유달리 느리고 크게 울렸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짜냈다. ....그만해. 이상하게 비틀린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나는 다시 한번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점이라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환히 웃는 너의 얼굴에, 다시 한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너는 곧 한발짝 물러섰다. 좀 전의 포옹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가볍게 땅을 딛는 너의 발걸음에 내가 되고 싶었던 것들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곳을 향하는 너의 얼굴에 나는 더욱 우울해졌다. 자유로이, 아쉬운 그 무엇도 남기지 않은 채, 마치 새처럼, 그렇게 너는 나를 떠나갔다.

 

 

 

그 모든 기억은 조금씩 퇴색되고 변질되어 마치 먼지낀 액자 속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한 순간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가끔씩 눈에 띄어서 먼지를 털어보는 정도의, 그냥 그 정도의 기억. 생각날 때마다 자신에게 씁쓸한 미소를 안겨주는, 그런 기억. 그런 순간. 그런... 감정. 그래, 지금처럼.  

 

-오랜만이야.

너의 목소리가 기억 속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경쾌한 목소리도, 들뜬 어조도 여전해서 마치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그 순간이 울렸다. 너는 여전히 망설임없는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달라진 점이라면, 네가 내 목을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렸다는 것. 너는 그대신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잘 지냈어?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미소처럼 보였던걸까, 너는 긴 속눈썹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는걸. 이런 낮에, 너와 내가.   

스크를 쓰지 않은 너의 얼굴은 어쩐지 낯설었고 너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눈가에 희미하게 묻어나는 어색함을 나는 알아차렸다. 하지만 너는 곧 친근하게 내 팔을 껴안다시피하며 팔짱을 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디 가서 커피 한잔이나 하자. 쾌활한 목소리로 내 손을 잡아 끌어당기는 너의 미소가, 여전해서. 나는 조금 우울해지고 말았다.  

 

 

그컵에서는 젖은 커피향이 피어올랐다. 너는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커피잔을 손으로 꼭 쥔채 쉴새없이 떠들었다. 추위에 발갛게 물들었던 너의 손끝이 커피의 온기에 천천히 하얗게 가라앉는 것을 나는 보았다. 너는 내가 등진 것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 발끝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흔하고도 사소한 주제를 이야기했다. 어젯밤 본 영화, 며칠 전에 데이트한 여자, 오늘의 날씨. 너는 이따금 나에게도 적절한 동의와 반문을 기대하며 나에게 사소한 몇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오래 전부터, 혼자 있을때는 그저 웅크려 잠을 잔다는 사실을 나는 말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너는 무뚝뚝한 내 대답에 실망한 듯 짧은 한숨을 흘렸지만 이내 다른 주제로 넘어가며 또다시 무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튀어오르고, 발을 굴렀다가, 뛰어가는 너의 이야기는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다만 너는 이따금 머뭇거릴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네가 내가 놓고 온 것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내가 그때 마침 브루스....

무심결에 튀어나온 이름에, 너는 입을 다물었다. 너의 얼굴에는 빠르게 후회하는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동그란 눈동자가 내 얼굴을 흘깃 살피고는 서둘러 다시 다른 곳을 향했다. 그의 이름이 나와도 난 상관없다고, 난 아무렇지도 않다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잠자코 아무 일 없었다는 척 하는 너에게 동참했다. 너는 곧 다시금 다른 주제를 입에 올렸다. 최근에 이 근처에 새로 오픈했다는 쇼핑몰 이야기였다. 너의 손은 여전히 꼭 커피잔을 붙잡고 있었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커피잔을 감싼 너의 손가락은 흉터투성이였다. 나는 너의 흉터를 하나하나 읽으며, 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마치 우리도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처럼, 행동하는 너.  

없어질리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너를 말리지 않는 것은, 그런 배려를 해주는 건 오직 너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너는 마침내 모든 주제가 떨어져 버린 모양인지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차가운 커피잔을 두 손으로 꼭 감싸쥔 채 너는 말이 없었다. 먹먹한 침묵이 안개처럼 우리를 감쌌다. 주위의 모든 소음들이 초점이 흔들린 채 멀어져갔다. 너는 고개를 숙인 채 컵의 손잡이에 난 흠집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나는 네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 지금껏 소비한 시간은 전부 다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모를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런 너를 위해서, 나는 나지막한 한숨을 쉬면서,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나는 잘 지내.

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행이야. 너의 조그마한 혼잣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너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한없이 다정하고, 한없이 상냥한, 그리고 누구에게나.  

는 곧 일어섰다. 더 이상 앉아있으면 실례가 될 정도로 오래 머물렀던 탓이다. 너는 언제나 내가 부러워했던 새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일어섰다. 너는 웃으면서 인사했다. 다음에 또 보자, 제이슨. 나는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손을 흔들고 몸을 돌렸다. 찌링-하는 문에 달린 벨소리가 울리고 너는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여전히, 한점의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그때처럼 나는 또다시 홀로 남았다. 네가 남겨놓은 차갑게 식은 커피잔을 나는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너의 하얀 손가락이 얽히던 잔상이 떠올랐다 흐려져갔다. 나 역시 일어섰다. 이제는 가야할 때였다.    

 


제곧내. 나도 왜 썼는지 잘 모르는 단문. 요즘 딕 짝사랑하는 슨이한테 꽂혀서 그런 방향으로 쓰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나도 모르게 중언부언에 횡설수설 감정과잉. 하지만 최근에 그나마 이정도로 길게 글쓴게 이것뿐이라(...)

'글연성 > D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딕&슨]모두가 거짓말을 해  (0) 2013.12.17
[뎀&딕]첫눈  (0) 2013.12.12
[뎀팀]질투  (0) 2013.11.21
[딕슨딕]유리컵  (0) 2013.11.18
[딕슨]무제  (0) 2013.11.1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