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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슨]모두가 거짓말을 해 본문

글연성/DC

[딕&슨]모두가 거짓말을 해

DayaCat 2013. 12. 17. 15:30

진단메이커 - '모두가 거짓말을 해', 키워드는 낯설음, 조용한 느낌

 

-반가워.

나직한 목소리가, 새하얀 숨결과 함께 흘러나왔다. 차가운 날이었다. 옷이 미처 보호해주지 못한 맨살은 꼭 얼음에 문지르는 것 같은 감각에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추위에 창백하게 질린 피부 위로 코끝과 볼만이 꼭 물감을 뿌린 듯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망토도 없는, 얇은 코스튬 하나로 버티기엔 퍽이나 무리인 날씨였다. 제이슨은 그런 딕을 보며, 굳이 추워보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뒹굴었던 날들 중에는 눈이 종아리까지 쌓인 날도 있었다. 그날도 그가 입은 옷은 오늘과 똑같았다. 그러니 제이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거기다 그 역시, 외투랍시고 걸친 건 낡은 가죽자켓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제이슨은 말없이 들고 있던 권총을 홀더에 집어넣었다. 경계를 푸는 제이슨의 모습에 딕은 미소지었다. 곧 그는 골목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채 녹기도 전에 발걸음에 밟혀 얼룩덜룩하게 더러운 얼음의 흔적으로만 남은 땅임에도, 그의 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로이랑, 코리는 잘 지내?
-응.

아무렇지도 않게 한때의 연인과, 한때의 친구의 안부를 묻는 딕의 어조는 가벼웠다. 지금은 제이슨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제이슨은 작게 우물거리듯 물었다. 너는? 딕은 얼어붙은 얼굴을 움직여 미소지었다. 웃을 때면 가늘어지는 파란색 눈동자도 오늘따라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나도, 잘 지내.

브루스도 잘 지내고, 알피도, 팀도, 바바라도.... 딕은 그와 제이슨이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하마터면, 이 세상에서 없어진 이름을 말할 뻔 했다. 제이슨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딕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곧, 그는 하얗게 다시 한번 숨을 토해내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너도 웬일로 고담에 돌아온거야?

-그냥, 가끔은 고향에 와보고 싶어질 때도 있는 거지.

뻔한 질문, 뻔한 대답. 영양가라고는 없는 대화 속에서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분위기와 어조와 눈매를 살폈다. 딕이 다시 한번 툭 한마디 던졌다. 브루스는 만났어? 그 순간 제이슨의 탁한 파란 눈동자가 살짝 일그러졌다. 살짝 깨무는 입술이, 어그러지는 눈가 주름이, 격렬한 감정을 토해낼 것처럼 꿈틀거리다가 곧 사라졌다. 제이슨은 곧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딕은 알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는 이제 괜찮아질거야.

딕이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어쩌면 그건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딕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제이슨의 손을 바라보았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이 어쩐지 추워보여 그는 그 손을 붙잡았다. 제이슨은 평소처럼 빼거나 하지 않은 채, 그저 딕이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차가운 가죽과, 차가운 천의 감촉이 서로 쓸리고 비벼지며 온기를 만들어냈다. 그 미약한 온기는 곧 냉기에 먹혀 사그라들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아서 딕은 가만히 제이슨의 손을 붙잡았다. 제이슨은 그런 딕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툭 던졌다.

-거짓말은 할 필요 없어.

딕이 웃었다. 서글프게, 파랗게 얼어붙은 미소였다.

-어차피 모두가 거짓말을 해.

너도, 나도, 브루스도. 그리고 자신이 죽을 줄 몰랐던 그 작은 어린 아이도. 딕은 마지막 말을 삼켰다. 말하지 않아도, 제이슨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각자의 상처를 감춘 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도.  

-그러니까, 오늘만은 괜찮아.

딕의 나지막한 말에, 제이슨은 눈을 감았다. 그래, 오늘만은 너의 말을 믿고 싶어. 제이슨은 아무 말없이 딕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다정한 위로처럼 희미한 온기가 손끝에 스며들어왔다. 



데미안이 죽고난 직후, 브루스가 제이슨한테 못할 말을 했던 그때 이후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데미안의 이름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지만요. 키워드는 낯설음인데, 쓰다보니 까먹음ㅋㅋㅋㅋ 그리고 데미안 죽었을 때가 딱히 겨울은 아니었지만 요즘 날이 너무 추워서 쓰다보니 겨울로 쓰게되었네요. 아참, 그리고 애들 마스크 쓰고 있는 거 까먹음ㅋㅋㅋㅋㅋㅋ아우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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