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D.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정기 주주 총회는 성공리에 끝났다. 오랜만에 그룹의 최대주주인 데미안 웨인과 회장인 팀 웨인까지 참석한 회의인지라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간 회의기도 했다. 복잡하고 긴 회의가 끝나면 그들은 오늘을 위해 빌린 최고급 레스토랑에 안내되어 간단한 오찬을 즐길 예정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회의가 끝나고 마침내 오찬이 시작되었다. 붉고 싱싱한 장미와 하얀 안개꽃이라는 고전적인 조합으로 꾸며진 테이블 세팅이 돋보였다. 중앙에는 데미안 웨인이, 바로 그 옆자리에는 팀 웨인이 앉았다. 이윽고 모든 이들의 착석이 끝나고 데미안은 간단하게 건배를 제의했다. 그최고급 샴페인의 공기방울이 그가 들어올린 잔 속에서 노랗게 퐁퐁 터지고 있었다. 사람들도 함께 잔을 올리며 건배를 외쳤다. 그 와중에서 팀은..
데미안은 제이슨을 처음 봤던 그 순간을 기억했다. 그는 그날 따라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물론 아침에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절인 청어가 식사로 나왔으며, 게임기를 켜보니 팀이 자기 기록을 추월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학교 숙제가 산더미같이 쌓이는 바람에 오늘은 브루스와 팀만이 패트롤을 돌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런 짜증이 불합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짜증을 더 돋구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 앞에 선 이 꾀죄죄하고 빼빼 마른, 그런 주제에 사람을 쏘아보는 이 꼬맹이는 도대체 뭐냐고. 데미안은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자신의 아버지, 브루스를 노려보았다. 브루스는 꼬맹이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그의 이름을 소개했다. -이 아이는 제이슨 토드. 오늘부터 우..
누가 무엇을 먼저 시작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무엇이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했는지도 조금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딕 그레이슨에게는. 언제부턴가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뒤틀린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뿐이다.제이슨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 위로 홍조가 떠올랐다. 딕은 제이슨의 목에서 손을 뗐다. 붉은 손자국이 그의 목에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제이슨은 쿨럭거리며 한참동안 기침을 했다. 딕은 느긋하게 그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제이슨의 눈가에는 물기가 맺혀 있었다. 그는 딕을 노려보았다. 딕은 그 눈빛을 웃음으로 받아냈다. -새로운 놀이인데, 어때?-꺼져, 딕 그레이슨.제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