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D.
안녕, 이라는 한마디였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그러했다. 뉴욕의 뒷골목에서 제이슨이 감히 레드후드의 주머니를 털려고 하던 간큰 강도 둘을 반쯤 죽여 놓았을 때, 피터가 제이슨에게 처음 건넨 인사였다. 데일리 뷰글의 1면을 언제나 장식하는 유명인사이자 모두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의 인사에 대한 제이슨의 반응은 이러했다. "미쳤냐?" 거미줄에 거꾸로 매달린 스파이더맨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이런 걸 보고도 안녕은 무슨 빌어먹을 안녕이야. 아,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건 정당방위였으니까 엄한 시비 털지 말고 그냥 너는 너 갈길 가라, 응?" 그러면서 바닥에 널부러진 강도들의 몸을 발로 툭 쳤다. "너구나, 그 고담의 레드후드가." 빨갛고 하얀 큰 눈의 마스크에서 나온 목소리는 의외로 낭랑했다. 스파이더맨..
1.죽음의 냄새가 났다. 감각을 꽉 채우는 진한 구정물 냄새와 피냄새가 뒤섞여 어느새 하나가 되어버린 냄새. 케인은 이 냄새에 아주 익숙했다. 그가 살아있던 대부분의 시간은 죽음을 향해 천천히 기어가는 과정이었으므로. 언젠가 차라리 죽었더라면 편했을 것이라고, 내뱉은 적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자신을 노려보며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도 못한채 붙들려 기다리기만 하는 것. 발버둥치고 괴로워해도 결국엔 시궁창 속에서 죽어갈 것임을 깨닫는 순간. 살아있는 매 순간순간이 끔찍한 삶. 케인은, 케인은 두 번 다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엔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케인은 비척거리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진득한 피가 웅덩이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터널 속으로 울렸다. 다시 한 번 걸으려고 다리를 들어올..
2.19세기(2) 피터를 두번째로 만났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자와 어깨 위의 천 위로 빗방울이 부슬부슬 젖어들었다. 그럼에도 거리의 사람들 누구도 우산을 선듯 꺼내는 이가 없었다. 런던에서 이정도 비로 허둥대는 사람은 드물었다. 맷은 마차를 천천히 달리게 했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하릴없이 서성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레스터 스퀘어에는 유독 그런 이들이 많았다. 맷은 광장을 가로질러 지나가다가 문득 마부에게 멈추라고 말했다. 마부는 거리로 들어가는 길목 바로 앞에서 멈추는 게 탐탁치 않아보였지만 잠자코 말을 멈추었다. 맷은 문을 열고, 인사했다. "혹시 날 기억하나?" 소년의 미소가 들렸다. "당연하죠, 잘생긴 장님 신사 아저씨." 짐짓 장난스레 울리는 목소리. 맷은 작게 안도했다. 맷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