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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피터/연재]맷피터 환생 AU - 2.19세기(2) 본문

글연성/[마블]맷피터 환생 AU

[맷피터/연재]맷피터 환생 AU - 2.19세기(2)

DayaCat 2015. 8. 16. 19:32

2.19세기(2)


 피터를 두번째로 만났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자와 어깨 위의 천 위로 빗방울이 부슬부슬 젖어들었다. 그럼에도 거리의 사람들 누구도 우산을 선듯 꺼내는 이가 없었다. 런던에서 이정도 비로 허둥대는 사람은 드물었다. 맷은 마차를 천천히 달리게 했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하릴없이 서성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레스터 스퀘어에는 유독 그런 이들이 많았다. 맷은 광장을 가로질러 지나가다가 문득 마부에게 멈추라고 말했다. 마부는 거리로 들어가는 길목 바로 앞에서 멈추는 게 탐탁치 않아보였지만 잠자코 말을 멈추었다. 맷은 문을 열고, 인사했다.


 "혹시 날 기억하나?"


 소년의 미소가 들렸다. "당연하죠, 잘생긴 장님 신사 아저씨." 짐짓 장난스레 울리는 목소리. 맷은 작게 안도했다.


 맷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피터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여전히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으나 아주 미세한 근육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맷은 놓치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어... 아니, 아니예요." 피터는 잠시 망설이는 듯 맷과 마차 안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움직임은 느리고 무거웠다. 문이 닫히고 마차가 출발하자 피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래서, 제 솜씨를 못 잊어서 이렇게 다시 오신건가요?" 맷은 입가에 약하게 미소를 띠면서 대답했다. "음.... 글쎄, 미안한 말이지만 네 '솜씨' 때문은 아닌 것 같구나." 그렇다고 네가 못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맷도 장난스레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는 피터의 직업적 자부심을 존중해줄 의사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순간 피터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조금 달라진 맥박의 리듬에 맷도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그에겐 아직도 앞이 보일 적의 버릇이 남아있었다. "그쪽은 보통 신사분들과는 다르신 것 같네요, Sir." "어떤 점이?" "글쎄요, 굳이 따지자면...." 피터가 손을 뻗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체온이 맷의 바지춤에 닿았다. 맷은 불쾌함이 아닌 놀람으로 살짝 눈썹을 치켜떴다. "..보통은 제가 여길 어떻게 만져주는지만 신경쓰시죠." 맷은 피터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발하듯이 치켜뜬 눈, 그리고 한쪽만 올라가있는 입꼬리. 그럼에도 그 얼굴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분명한 호의였다. 맷은 웃음기어린 입매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피터의 손을 잡아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네 '솜씨' 때문에 온게 아니란다." "그럼 뭔가요? 보통 마차로 부르는 신사들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죠. 엉덩이를 대달라던가, 자기를 때려달라던가... 죄송하지만 그럴 거면 저는 여기서 나갈거예요. 저번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지만, 전 그런 일은 안해요." 피터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경쾌했지만 그 내용은 잔뜩 날이 서 있었다. 맷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 이렇게 마차를 탄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순간 피터의 말문이 막히는 소리를 맷은 들었다. 엇, 하고 아주 작게 튀어나와 혀 끝에서 살짝 맴돌고는 휘발되는 소리. 피터는 침묵했다. 그 사이로 마차가 덜컹이며 굴러가는 소리가 엷게 스며들었다. "내가 이렇게 널 부른 이유는... 제안할 게 있어서란다." 맷의 말에 피터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동자. 그 눈동자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묻고 싶은 충동을 맷은 잠시 억눌렀다. "나는 네가 거리의 삶이 아닌, 평범하고 부족함 없는 삶을 가질 수 있도록 후원하고 싶다. 그러니까 바꿔말하자면 난 널 돕고 싶은거라고 할 수 있겠지." 맷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찬찬하게 말을 이었다. 피터의 호흡은 변화가 없었다. 맷은 초조하게 피터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안이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그 대가로 제게서 뭘 원하시는 거죠?" 피터가 불쑥 물었다. 앞선 대화 내내 묻어있던 장난기와 얕은 호의마저도 증발되어버린 말투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맷의 예상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맷은 좀전과 똑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교육, 이라고 하면 될까? 네가 그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테니 너는 잘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거지." 피터는 팔짱을 끼고는 맷을 바라보았다. 노골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마도 피터는 자신이 보이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이건 무슨 찰스 디킨스 소설의 한 장면 같네요. 다른 게 있다면 저는 정체불명의 신사의 호의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컸고, 또 남창이라는 거죠." "글을 읽을 줄 아나? 의외군." 엉뚱한 맷의 대답에 피터가 어이없다는 듯이 하,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히 이 시대의 기준으로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맷은 신경쓰지 않았다. 피터도 분명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글을 안다니 좀더 이야기가 쉽겠군. 방금 디킨스 소설 이야기를 했는데 너도 디킨스 소설을 봤다면 이해하겠지. 이유없어 보이는 친절과 호의에도 분명히 그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것을.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나?" 피터의 미간 주름이 좀더 깊어졌다. 맷은 천천히 뛰기 시작하는 피터의 맥박을 들으며 싱긋 웃어보였다. 가로등 불빛이 마차 안으로 비쳐들어왔다. 마주보는 무릎과 무릎 사이의 공간 속으로 귤색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피터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밀뱅크에서 피터는 내려달라고 말했다. 문을 열자 강바람이 훅 끼쳐들어왔다. 맷은 피터와 함께 내렸다. 템즈 강의 수면을 빗방울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진한 물냄새가 풍기는 거리의 위에 둘은 마주보고 섰다. 소년은 머리의 납작한 모자를 벗었다. "오늘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엔 제가 직접 가서 대답을 드릴게요." 맷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내가 가지. 만나는 방법은 이제 알고 있으니까." 피터의 얼굴 표정이 잠시 기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지요, Sir, 그런데 성함이..?" 맷은 눈이 먼 이후로 소리에 민감해졌다. 이전까지는 별 생각없이 그때그때 붙이던 이름도 소리의 울림을 생각해서 고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름도 그러했다. "매튜, 머독. 그냥 맷이라고 부르게."  소년이 느리게 맷의 이름을 되풀이했다. "맷, 머독." 소년의 입술이 움직이고 혀끝이 입천장을 스치며 만들어내는, 그 이름. 맷은 그 순간 이 이름이 그토록 사랑스럽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Mr.머독. 당신은 정말 신사답지 않으신 분이군요. 아, 물론 좋은 의미로요." 피터는 급히 한마디 덧붙였다. 그는 이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강변의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며 피터의 몸 위로 쏟아졌다. 피터는 모자를 허리께로 내려들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오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Mr.머독." 


 피터의 숨결과 심장소리와 체온이 서서히 멀어졌다. 피터의 흔적이 엷은 빗속으로 천천히 지워지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맷은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앉자마자 그는 한숨을 쉬며 쓰러지듯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아...." 맷은 탄식을 내뱉으며 눈 위로 손을 덮었다. 내내 바짝 긴장되어있던 근육에 힘이 풀리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노라고. 맷의 소망은 단 한가지였다. '그'가 행복해지는 것. 그러니까 차라리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저 그를 돕는 이로서 접근한다면... 그렇다면 이번에는 성공하지 않을까. 그렇게 맷은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 그 중 하나를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지.
 맷은 집시 여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랐다. 그저, 잊어버리고 사랑하지 않으면 될까요. 맷의 말에 그녀는 대답했었다. 자네도 알잖나. 그럴 수 있다면 진작에 그랬을 것을...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가 아직 앞이 보일 무렵의, 그리고 또다른 실패를 경험하기 전의. 맷은 마부에게 돌아가자고 말했다. 엷게 내리던 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창에 빗방울이 부딪치며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마차는 밤거리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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