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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슨]무제 본문

글연성/DC

[딕슨]무제

DayaCat 2013. 11. 16. 20:21

아, 이런. 더러워졌잖아.

남자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심드렁했다. 마치 지나가다 바짓단에 먼지가 묻은 걸 내려다볼때처럼, 이내 잊혀지고 말 약간의 짜증만을 담은 어조였다. 한없이 하찮은 일이라는 듯한 그 말투가, 제이슨에게는 마치 경멸과 혐오를 던지는 것처럼 들렸다. 제이슨은 입술을 다시 한번 깨물었다. 맞아서 찢어진 입술에서는 비린 피맛이 났다.


제이슨은 양 팔을 구속 당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강제로 앉혀져 있었다. 두 팔은 쇠사슬로 칭칭 감긴 채 벌려져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곧 험악한 사내들이 그의 명치를 가격하고는 그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사이에 강제로 무릎을 꿇고 앉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홀로 뒤에서 의자에 몸을 기댄 채였다. 몸에 잘 맞는 베스트 위로 드러나는 붉은 와이셔츠의 색깔이 선명했다. 정장 바지의 곧은 선 아래로 초콜릿색 구두의 끝을 까닥이며, 남자는 모든 것을 흥미롭다는 듯이 관람했다. 제이슨이 몸을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그의 부하들이 제이슨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발로 명치를 걷어찼다. 제대로 급소를 얻어맞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이슨을, 남자는 예술품이라도 되는 양 감상했다.

마침내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가 걸을 때마다 구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지하실 안에서 울려퍼졌다. 그는 몸을 구부려 제이슨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제이슨의 턱을 치켜올렸다. 제이슨은 이를 갈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의 파란 눈동자가 살풋 가늘어졌다. 제이슨은 그 눈동자를 다시 한번 노려 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딕 그레이슨.

오랜만이야, 제이슨. 아니 레드후드던가?

그러는 너는, 레니게이드였던가?

제이슨의 말에 딕은 후훗, 하고 웃었다. 동생의 이름에서 나온 자신의 또다른 이름은 사뭇 낯설은 느낌이었다. 네가 그렇게 불러주니 기쁜걸. 내 사랑하는 동생아. 딕의 다정한 어조에 제이슨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미쳤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줄은. 제이슨은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저주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딕 그레이슨은 시끄럽지만 언제나 유쾌한, 그런 남자였다. 그리고 밀어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의붓동생에게도 애정을 퍼부었던 그런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마치 광대처럼 얼굴에 새겨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 속의 광기를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남자였다.

넌 미쳤어.

나도 알아.

딕은 유들유들하게 대답하며 제이슨의 턱을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이미 사내들에게 맞아서 찢어지고 멍든 얼굴의 상처들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그는 다정하게 제이슨의 뺨을 쓰다듬었다.

많이 아팠지?

자기가 때리라고 시킨 주제에 이런 태도라니. 제이슨은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었다. 미친 놈. 하지만 딕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제이슨의 터진 입술을 훑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선명한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딕은 그걸 혀로 살짝 핥았다. 여전히 그의 파란 눈동자는 제이슨에게 못박힌 채였다. 제이슨은 질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변태 새끼.

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제이슨의 고개가 돌아갔다. 동시에 그의 상처에서 피가 튀었다.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핏방울을 내려다보며, 딕은 중얼거렸다. 아, 이런. 더러워졌잖아. 그는 곧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동작으로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하얗고 긴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자 곧 부하가 라이터를 꺼내 그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담배 끝의 발간 불티가 깜박이자 곧 푸른 연기가 딕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희뿌연 연기 사이로 딕의 얼굴에 미소가 어른거렸다. 그는 다시 몸을 숙여 제이슨과 시선을 맞추었다.

넌 로빈일 때부터 담배를 피웠었지.

나는 그런 널 보고 항상 끊으라고 잔소리했었고. 딕의 표정은 재밌어서 죽겠다는 듯 시종일관 유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너도, 나도 그때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치? 다정하게 되묻는 딕을 제이슨은 질린 눈으로 보았다. 그러고보니 너도 피고 싶으려나. 딕은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제이슨의 입술에 물려주었다. 제이슨은 잠시 딕을 노려보다가 한모금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대로 그 연기를 딕의 얼굴에 뿜어주었다.

새하얀 연기가 딕의 얼굴 앞에서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가 흩어졌다. 딕은 명백하게 무례한 제이슨의 행동에도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기를 띤 채였다. 하지만 곧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른하게 웃었다. 못된 아이네, 제이슨. 언제나 넌 그랬지만.

못된 아이는 벌을 받아야지.

딕은 들고 있던 담배를 제이슨의 목덜미에 꾹 눌렀다. 큭..!!! 제이슨이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치직-하고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들려왔다. 단백질이 타는 특유의 냄새가 코 끝에 훅 끼쳐왔다. 제이슨은 입술을 깨물면서 딕을 노려보았다. 딕은 제이슨의 머리카락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제이슨의 턱이 올라가면서 방금 전에 지진, 쇄골 위의 동그랗고 새빨간 화상자국이 드러났다. 딕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 이제 재미있는 놀이시간이야. 제이슨.

 

 

담배빵 당하는 슨이를 보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씀. 개인적으로 레니게이드 버전 딕 좋아해요. 까만 정장에 붉은 와이셔츠를 입은 레니게이드 버전 딕을 우연히 본 그 순간 사랑에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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