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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피터]아마도, 그건

DayaCat 2014. 7. 29. 23:42

 내 첫사랑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너희들 무슨 여자애도 아니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 아, 그래. 뭐 나야 여자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지. 내 첫 여자친구는 금발 치어리더였어. 알잖아? 태닝한 피부에, 자연산 금발, 웃으면 보조개가 들어가는 얼굴. 가슴도 컸지. 잘 아네, 그게 사실 포인트지.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미식 축구부의 주전 쿼터백이었으니까. 사실은 이렇다 할 이유가 있어서 사귄 건 아니야. 그냥 치어리더와 미식축구 선수는 사귀는 게 당연한 거잖아. 너희들도 고등학교 나와봐서 알겠지만 그건 그 나이대 애들한텐 해가 지면 밤이 온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거라고. 그리고 나는 우리학교 치어리더 중에서 제일 예쁜 애랑 사귄 거고. 그런데 여자를 사귄다는 건 확실히 귀찮더라고. 섹스는 좋았지만 그외의 것들이... 그 놈의 문자는 왜 그렇게 보내는지. 어차피 같이 가봤자 병풍처럼 세워놓을 거면서 왜 쇼핑은 굳이 같이 가자고 하는지. 조그만 실수만 해도 금방 샐쭉해져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거냐고 묻고. 어차피 예스, 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거잖아. 아니라고 대답하면 헤어지자고 할 거면서 대체 그런 건 왜 묻는 거야?결국 짜증나서 3개월만에 헤어졌어. 그래도 그만큼이나 버틴 건 얼굴이 예뻐서였지.


  그럼 사랑이 아니지 않냐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사랑이라니, 설마 영화 속에 나오는 그런 걸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 하루라도 못 보면 가슴 아프고 그 여자를 위해선 뭐든지 해줄 수 있고, 그런 걸 말하는 거야? 꿈깨, 그런 건 세상에 없어. 너희들이 무슨 트와일라잇이나 보는 여고생이냐? 내참나, 내가 군대까지 와서 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는데.


  아, 그래. 초등학생 때. 그래, 앤디 네 말도 틀린 건 아니지. 초등학생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히는 그런 것도 사랑은 사랑이겠지.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여자는 괴롭히지 않았어. 워낙 신사여서 말이야. 어쭈, 조지 너 방금 비웃었지. 나 지금 기억했다. 너 나중에 보자. 하여간 니들이 믿든 안 믿든 난 어릴 때부터 여자를 존중했다고. 내가 괴롭힌 대상은 언제나 남자애였어. 특히나 초등학교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오래 괴롭힌 애가 하나 있었는데... 파커라고, 지금은 내 친구야. 그래, 맞아. 네 말대로 그러긴 쉽지 않지. 나도 놀라워. 그 녀석이... 나를 용서해줄 줄은 몰랐거든. 십년 가까이 괴롭혔는데도.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난 덩치도 크고, 운동도 잘했으니까 나한테 관심을 주지 않는 녀석이 있다는 걸 못 견뎌했는지 몰라. 그 녀석은 내가 우승컵을 타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과학책에만 코를 처박곤 했거든. 그런 복잡하고 지루한 것들이 뭐가 재밌다는 건지. 아직도 기억해.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다음날 내가 미식축구부 녀석들하고 교실에 들어오니까 모두들 나를 향해 환호를 내질렀거든. 남자들은 휘파람을 불고 여자애들은 새된비명같은 소리를 질렀지.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 망할 자식은 여전히 그놈의 과학책을 붙잡고 앉아있더라니까. 그날 그 녀석은 단 한번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어. 그렇게 시끄러웠는데도.... 하긴, 그 녀석은 항상 그랬다만. 너무 짜증나서 결국 그 녀석의 멱살을 잡아 올렸지. 그제서야 날 보더라. 멱살이 잡혀서도 여전히 밉살스럽게 무슨 일이냐는 듯한 눈으로. 결국 그날 녀석은 오후 내내 라커에 갇혀 있었어. 


  물론 어릴 때니까. 그때 나는 멍청하고 못돼먹은 놈이었으니까. 그래도, 사실은... 난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 난 그냥 그 녀석이 날 봐줬으면 했던 건데......


 됐어. 이런 옛날 이야기는 해봤자 아무 쓸모도 없어. 난 그냥 이제 자러 갈거다. 좀 있다 새벽에 야간경계근무 서러 가야하니까. 너희들도 수다는 그만 떨고 이제 자러 가라. 앤디 너도 나랑 같이 근무 서야하지 않냐? 그래, 얼른 베개에 그 얼굴을 박으라고. 안 그랬다간 졸다가 사막에 얼굴을 박을 테니까. 이라크까지 와서 옛날 이야기니 사랑이니 해봤자 머리만 심란해지고 그러다 모래폭풍이 오는 것도 못 볼수 있다니까. 그러니까 다 잊어버리고, 잠이나 자야지. 그러니까 잘 자라구. 꿈도 꾸지 말고, 그냥 푸욱 자버려. 그게 제일 좋아.






플래시피터가 요즘 너무 좋네요... 그리고 아무도 파지 않았다 엉엉엉ㅠㅠㅠ혼자 자급자족 중입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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