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D.

[스팁버키]Remember me 본문

글연성/조각글

[스팁버키]Remember me

DayaCat 2014. 4. 16. 01:42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버키는 당연하다는 듯이 입대했다. 밤이 되면 올빼미가 울고 날이 밝아오면 참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그 역시도 그저 전쟁이 일어났으니 입대한다는 듯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스티브는, 친애하는 그의 친구는 언제나 당당했고 꼿꼿했기에, 그가 이뤄낼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에 나라를 지키는 것 또한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버키가 군복을 입고 그에게로 돌아왔을 때, 스티브는 맞춘 것처럼 군복이 잘 어울리는 자신의 친구를 보며 미소를 지었더랬다. 

 오랜만에 들린 그들의 단골 바는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먼지 낀 냄새가 맴돌았다. 하지만 위스키를 한잔에 1달러에 파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낡은 전축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재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스티브는 버키와 가볍게 잔을 마주쳤다. 투명한 유리컵이 맞부딪치며 술이 투명하게 찰랑였다. 그 너머로, 언제나처럼 미소를 띠고 있는 친구의 푸른 눈동자가 반가워, 스티브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한모금 삼켰다. 독하게, 혀끝을 스치며 목구멍으로 뜨겁게 넘어가는 술을 삼키자 버키는 키득거리며 무리하지 말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토닥이는 그 손의 감촉이 스티브의 심장을 가볍게 두드리며, 괜한 반가움과 낯익은 그리움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가장 소중한 친구, 버키는 지금 바로 그의 곁에 있었다. 스티브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미소지었다.

스티브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버키는 훈련으로 오랫동안 떠나있었다. 선천적인 병약 체질로 군대라는 곳의 문턱조차 허락되지 않는 스티브에게, 군대는 미스테리 상자같은 곳이었다. 버키는 약간 흥분한 스티브의 질문 공세에도 위스키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훈련은 어땠어? 거지같았지. 그래도 해낼만 했어. 동료들은? 멍청이도 있었지만 괜찮은 놈도 있었지. 아, 그래도 난 언제나 네 가장 친한 친구라는 거 잊지 말고. 그거, 그건 뭐야?

 스티브의 마지막 질문에 버키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뭘 말하는 거지? 스티브의 손끝은 버키의 가슴팍을 가리키고 있었다. 버키는 고개를 한참 갸웃거리다가, 아, 하고 짧게 탄성을 지르며 군번줄을 들어올렸다. 흐릿한 술집의 조명을 부옇게 반사하는 은빛 조각. 버키의 손끝에서 마치 모빌처럼 팽글팽글, 은빛의 궤적을 그리며 도는 그것을 스티브는 가만히 쥐었다. 이건...?

-군번줄.

-군번줄? 흐음.. 이름하고, 번호하고, 그리고 이 알파벳은 뭐지?

군번줄 위에는 버키의 이름과, 군번과, 그리고 A,라는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버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거, 내 혈액형. 혈액형? 그걸 왜 여기다 적는거지? 버키의 눈이 스티브를 향했다. 언제나처럼 푸른 눈동자가 조금 흐려진 것도 같았다.

-내가 정말 심하게 다쳤을 때, 피를 수혈하려면 혈액형을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이건 내가 죽었을 때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들이야. 이름모를 시체면 곤란하잖아. 군번줄의 알파벳 위로 하나하나 손가락을 눌러가며 다정하게 말해주는, 나직한 어조에는 아무런 감상도 들어있지 않았다. 스티브의 눈동자가 버키를 향했다. 새파란 눈동자에, 처음으로 어린 다정한 슬픔과 배려를, 버키는 쓰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군대란 그런거야. 죽음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지. 버키는 다시 한번, 위스키를 홀짝였다.

-그래도, 스티브, 난 네가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할 거야.

그건, 아주 오래전의 대화. 




친구가 리퀘해서 쓴 무비버스 기반 스팁버키 조각글. 근데 딱히 스팁버키스럽지는 않네요ㅋㅋㅋㅋ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