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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슨&뎀]약속 본문

글연성/조각글

[딕&슨&뎀]약속

DayaCat 2014. 5. 16. 22:16

 낡은 도시 위로 비가 내렸다. 내리는 소리는 요란했으나 빗줄기는 약했다. 깨진 금 사이로 잡초가 삐죽 튀어나온 보도블럭 위로 빗방울이 동그란 무늬를 그리며 떨어졌다. 제이슨은 곧 고개를 들어 흐린 하늘을 쳐다보았다. 검은 우산이 하늘을 반이나 가리는 것이 어쩐지 성가셔, 제이슨은 들고 있던 우산을 그대로 접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올려다 본 하늘은, 지독하게도 탁한 빛깔이었다. 

 비는 더 약해지지도 더 세지지도 않은 채 끈질기게 내렸다. 제이슨은 먹먹한 공기 속으로 푸른 눈동자를 고정했다.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의 약속이었다. 그 색깔이 바래다 못해 바스라져버릴만큼, 오래 전의,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엷은 안개 사이로 누군가의 형체가 보였다. 제이슨은 눈썹을 찌푸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기억하는 사람은 저렇게 키가 크지 않았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너무도 오래되어,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제이슨은 형체가 조금 더 뚜렷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얼굴을 알아보았을 때, 제이슨은 놀라는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그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다, 토드.

 변성기가 지나 낮게 울리는 데미안의 목소리가 제이슨에게는 낯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브루스의 것과 닮은 목소리와, 눈썹과 입매를 보면서 작은 실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데미안의 짧은 머리카락 끝과, 어깨는 진한 색으로 젖어 있었다. 한 손에 검은 장우산을 들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는 제이슨 역시도, 우산을 한 손에 든 채 비냄새를 풍기며 서 있었다.

-네가 올줄은 몰랐는데.

  제이슨의 첫마디에 데미안은 쯧, 하고 기분나쁘다는 듯이 혀를 찼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변했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버릇이 그제서야 제이슨에게 실감을 주었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데미안 웨인이라는. 데미안은 푸른빛 눈동자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나도 오고 싶어서 여기 온건 아냐.

-그럼?

-그레이슨의 부탁이었으니까.

 데미안의 말이 과거형으로 끝나는 것을, 제이슨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예감하고 있었던 사실을 그저 다시금 깨달았을 뿐이었다. 제이슨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어긋난 약속, 지나간 시간, 길었던 헤어짐.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언제나처럼 해묵은 후회.

  제이슨은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마치 찡그리듯이 웃었다. 그래도, 네가 와줬으니 고맙다고 해야하나. 딕에게, 아니면 너에게. 그 목소리는 낮고 자조적이었다. 데미안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누구에게도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약속은 약속인 거니까.

 나도 약속을 지켰고, 너도 약속을 지켰고, 딕도 약속을 지킨 것 뿐이야.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해도. 데미안의 마지막 말이 습기찬 공기 속에서 먹먹하게 울렸다. 



비가 오는 일요일에는 글이 쓰고 싶어지죠. 온리전도 끝난 김에 손도 풀 겸 간단하게 끄적거린 조각글. 딕<슨<뎀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싶었는데 이건 뭐 커플링도 뭣도 없는 뻘글이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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