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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슨]그의 노래 본문

글연성/조각글

[딕슨]그의 노래

DayaCat 2014. 12. 11. 23:16

맨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던 것은 어두운 저택 안, 열려진 방문 틈 사이로였다. 혼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앳된 소년의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설었다. 딕은 슬그머니 열려진 문 틈새로 머리를 내밀었다. 제이슨이 교과서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숙제라도 있는 걸까, 오래된 동요를 부르는 제이슨의 목소리는 맑고 청량했다. 평소 거칠었던 그의 언행을 생각해보면 놀라우리만치 단정하고 깔끔해서 딕은 놀라면서도, 어쩐지 제이슨이 새삼 귀여워보여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었다. 그리고 제이슨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문에 머리를 기대고 제이슨의 노래를 한참동안 듣고는 했다.  

 

 

그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은 항상 좋았다. 낮은, 그러면서도 의외로 소년의 음색이 묻어나기도 하는 묘한 느낌의 목소리는 평소의 그와는 사뭇 다른 울림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그가 자그마한 소년이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따금 관계를 가진 아침날, 그가 나지막하게 흥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고는 했다. 언제나 그럴 때면 천천히, 그가 자신이 깨어났다는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살며시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 그대로 노래를 멈춰버리고 마니까. 사실은 조금만 더 크게, 더 길게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싶은데.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할 노래. 딕은 그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며, 노래를 나지막하게 부르는 제이슨의 얼굴을 다시금 몰래 훔쳐보곤 했다.  





작년에 쓰고 잊어버렸던 조각글을 발견했네요. 뭔가 더 쓰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안나서...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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