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D.

[딕슨딕]딕 생일 축하 연성 본문

글연성/DC

[딕슨딕]딕 생일 축하 연성

DayaCat 2013. 11. 13. 01:22

그는 항상 웃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더군다나 오늘은 더욱 더 환하게 웃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이유로 제이슨은 여기 오는 것을 무척이나 망설였다. 스스로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횟수를 세기도 어려우리만치, 그냥 한없이 머리가 아플만큼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와버렸다. 일단 빚지고는 살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가 자신의 생일 때 필요없다는 데도 강제로 덥석 안겨준 선물의 답례는 해야했다. 제이슨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차가워지는 가을 바람을 맞으며 길 위를 서성였다. 버석이는 호주머니 속, 손 끝에 매끄러운 리본의 감촉이 걸렸다.  

고담의 늦가을은 가을보다는 겨울에 가까웠고, 그래서 아직 11월인데도 제이슨의 코끝은 금방 빨개졌다. 겨우 삼십분 정도만 서있었을 뿐인데. 제이슨은 마찬가지로 새빨개진 손끝으로 코끝을 문질렀다. 자신도 왜 이렇게 추워하면서 여기에 서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어차피 이 곳에 나오지 않을 텐데.  

그는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알프레드가 특제 초콜렛 케이크에다가 샴페인까지 곁들인 파티를 준비했을 것이다. 브루스는 무뚝뚝한 어조로 짧지만 다정한 축하의 말을 했을 것이고 팀은 눈을 반짝이며 그럴듯한 선물을 주었을 테고 데미안은 퉁명스럽게 말은 해도 간단한 선물 정도는 주었을 것이다. 바바라는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답게 사려깊은 선물과 다정한 축하의 메세지를 전해주었을 테지. 그는 그 모든 것에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며 일일이 유쾌하고 가벼운 농담으로 답례를 했을 것이다. 아마 그 광경을 창문 너머로 슬쩍 들여다 본다면 누가 보아도 단란한 가족의 한때라고 여겨질 만한, 그런 모습. 제이슨은 따스한 빛이 창문 밖으로 퍼져나올 그 모습을 생각하는 순간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가 서있는 싸늘하고 어두운 골목길에는 고장난 가로등만이 파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깜박거렸다. 그러니, 그가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제이슨은 알고 있었다. 어느새 벌써 말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났다.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제이슨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난 왜 여기 서 있는거지? 

제이슨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2시가 될때까지 이제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곧 그의 생일도 지나버린다. 그러니 제이슨이 여기 서 있을 이유도 곧 사라져버린다. 제이슨은 얼어서 이제는 감각이 없어진 손끝으로 다시 한번 호주머니 속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이걸 어디다 버려야 할까. 제이슨은 열두시 종이 치자마자 이 물건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자신을 상상했다. 더불어 그의 신체를 오체분시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담긴 걸죽한 욕설도.  

제이슨은 이제 행여나 아는 사람의 형체가 보일까봐 대로변을 기웃거리는 것도 포기했다. 제이슨은 그냥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12시가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버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 욕설과 짜증을 퍼부을 수 있도록, 제이슨은 그저 약속된 실망을 기다렸다.

그러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제이슨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늦었지? 미안해, 제이슨.
너....!

제이슨의 놀란 표정에 그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는 놀라서 굳어버린 제이슨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불빛 가까이에서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드러났다. 그는 미안한 듯, 다시 한번 웃으면서 제이슨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해, 많이 늦어버려서. 다들 너무 붙잡아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가 않았어.
.....뭐하러 여기 온거야?

퉁명스러운 제이슨의 말에 그가 빙그레 웃었다. 제이슨은 자기가 내뱉은 말을 곧 후회했다. 어차피 둘 다 아는 내용인데, 이런 식으로 구는 건 유치하지, 나도 알아. 제이슨은 자신의 유치함을 후회하면서, 동시에 그의 문자를 무시해버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자기 생일 때 뭐해줄거냐는, 그런 문자는 정말이지 읽어서 하나도 좋을 게 없었는데. 거기다 좋다고 답장을 보낸 자신도, 정말이지 한심하고.  

내가 여기서 만나자고 했었잖아. 너도 알겠다고 했고.
알겠다고 한 적은 없었어.

이것 봐, 또 이러지. 제이슨은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그에게는 어린애처럼 반응하게 되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이를 갈았다. 물론 제이슨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제이슨은 선물을 받고 싶으니 오늘 여기서, 밤 10시에 만나자던 그의 문자에 '꺼져'라고 짧고 간단한 답장을 보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Yes'로 알아들은 것은 전적으로 그의 해석이었으므로, 제이슨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러는 건 유치하지. 제이슨도 알고 있었다. 알아도 바뀌는 건 없었지만.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소리내어 웃었다. 젊은이다운 상쾌한 웃음소리였다. 그는 곧 손을 내밀었다. 제이슨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손을 쳐다보았다.

뭐야?
선물.

젠장. 제이슨은 욕을 읊조리면서 주머니에서 결국 물건을 꺼냈다. 기다리는 내내 만지작거렸던 탓에 상자를 감싼 리본매듭이 뭉개져있었다. 선물을 꺼내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제이슨은 그의 손에 선물을 떨어트렸다.  

맘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어.

마치 변명처럼 웅얼거리는 제이슨의 말에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어, 제이.

그는 조심스럽게 리본을 풀고 포장을 풀었다. 곧 드러난 것은 은색의 작은 열쇠였다. 그는 그걸 들고는 그 용도에 대해 알아내려는 듯 조심스럽게 살펴보다가, 문득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거, 혹시...?

제이슨은 지금 볼이 달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디까지나 차가운 밤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기가 준 선물이 창피하게 느껴져서 그러는 게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어쩐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제이슨은 결국 고개를 돌려버린채 웅얼거렸다.

네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네가 갖고 싶다고 한게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서.

마치 변명하는 듯한 제이슨의 말에 그는 다시 한번 믿을 수 없다는 듯 열쇠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만 좀 내 집에 몰래 기어들어와. 내가 왜 내 집에 들어오면서 깜짝 깜짝 놀라야 하냐?
-그럼 네가 열쇠를 주면 되잖아, 제이. 나도 몰래 들어오는 거 피곤하다고.  
-미쳤어? 그럼 세이프 하우스의 의미가 없잖아. 꿈도 꾸지 마.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계속 몰래 들어오는 수밖에.
-그러니까 그걸 하지 말라고!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열쇠를 가만히 손에 쥐었다. 서늘하게 살갗에 맞닿는 금속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딕은 다시 한번,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야, 제이슨. 

 

11월 11일이 딕 생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서, 부랴부랴 쓴 단문.

'글연성 > D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딕슨딕]유리컵  (0) 2013.11.18
[딕슨]무제  (0) 2013.11.16
[팀뎀/19금]동정과 오기와 교훈  (0) 2013.10.29
[뱃슨]아이스크림  (0) 2013.10.16
[연령반전 뎀팀]언쟁  (0) 2013.10.1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