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D.

[딕슨딕]담배 본문

글연성/DC

[딕슨딕]담배

DayaCat 2013. 9. 3. 12:41

새로운 시장의 후원파티를 왜 하필 지금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끼어있어야만 하는지 제이슨 토드는 조금도 납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고담의 밤거리는 근래들어 그가 봐온 이래 가장 조용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덕분에 시장의 지지도는 조금 더 치솟았고 시장이 이참에 다음번 선거를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는데 브루스가 마침 후원해주기로 했다는 짜증나고 복잡한 인과관계는 제이슨 토드가 알바가 전혀 아니었다. 그보다는 밤거리가 조용해진 탓에 할일이 없어 몸이 둔해졌고 그 탓에 자신을 초대하러 온 딕 그레이슨의 얼굴에 펀치를 제대로 날리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 온 것이라는 추론을 더 선호했다. 제이슨은 결국 얼굴에 짜증을 잔뜩 담은 채 브루스가 연설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발코니로 도망치듯 나갔다.

선선한 밤바람 사이로 도시의 불빛이 깜박였다. 보석처럼 화려하게 빛나며 빛을 흩뿌리는 고담의 야경은 낮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제이슨은 갑갑한 붉은 색 넥타이의 매듭을 살짝 풀어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는 몸을 살짝 구부리며 발코니 위로 팔을 올리고 상체를 기댔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고담은, 언제나 보던 광경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쫓는 이도 쫓기는 이도 없고 죽이는 이도 강간당하는 이도 없는 도시의 밤거리가 제이슨의 눈에는 낯설었다.

도로 위를 흘러가는 빛의 물결을 보며 제이슨은 담배를 꺼냈다. 길고 하얀 담배를 입에 문 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치익-하는 소리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 같았다. 제이슨은 담배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내쉬었다. 새하얀 연기가 새까만 밤공기 위로 흩어졌다.

-여기 있었네, 제이슨.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제이슨이 고개를 돌렸다. 딕이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검은색 양복과 파란 넥타이가 그의 몸에 잘 어울렸다. 딕은 어느새 제이슨의 옆에 다가왔다. 제이슨과 비슷한 자세로 발코니에 몸을 기대며, 딕은 쾌활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그냥, 고담.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제이슨의 머리카락과 넥타이가 밤바람을 따라 물결처럼 휘날렸다. 딕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제이슨의 담배를 톡, 하고 건드렸다. 담배 끝이 부서지며 회색 재가 바람 위로 떨어졌다. 

-아직도 담배 피는구나.

-끊기 쉬운 건 아니잖아.

물론 그렇다고 끊고 싶다는 건 아니야. 제이슨이 뒤에 덧붙이는 말이 어째선지 조금 어린애처럼 들려서 딕은 실소했다. 그는 뻗은 손을 거두는 대신 제이슨의 손에서 부드럽게 담배를 뺏었다. 제이슨의 눈동자가 딕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딕은 익숙한 몸짓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한모금 빨아들였다. 담배 끝에서 동그란 빨간 불빛이 깜박였다. 제이슨은 눈을 찡그리며 손을 내밀었다.

-돌려줘.

딕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제이슨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는 그대로 제이슨의 입술에 입맞추며 연기를 흘려넣었다. 하얀 연기가 마치 실처럼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왔다. 제이슨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캘록, 하고 기침을 했다. 기도를 잘못 건드리기라도 한건지, 제이슨은 한참을 그렇게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딕은 킥킥거리며 다시 한번 담배를 한모금 빨았다. 제이슨은 고개를 간신히 들어올리며 딕을 노려보았다. 눈에는 물기가 살짝 어려있었다.

-너, 딕 그레이슨...

제이슨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딕이 다시 한번 키스했다. 짙은 담배냄새가 나는 한숨이 뒤섞였다.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얼굴이 천천히 멀어졌다. 딕의 새파란 눈동자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 채 제이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딕의 손에서 담배를 뺏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는 다시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내쉬었다. 딕은 제이슨의 호흡이 형태를 갖추며 몽클몽클하게 공기 위로 퍼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딕은 제이슨의 몸을 팔꿈치로 툭, 하고 건드렸다.

-나도 한번만 더 줘.

-그렇게 피고 싶으면 네가 사오라고, 딕 그레이슨.

 제이슨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딕은 다시 한번 실소했다. 그래,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아. 딕은 그렇게 생각하며 부드럽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반짝이는 고담의 야경 위로, 담배연기가 천천히 바람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ㅇㄷ에서 엄청 땡기는 썰을 발견하고 연성해봄. 뭐 그래봤자 조각글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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