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D.
[맷피터]시작과 끝 본문
헤어지자고, 피터는 말했다. 그가 그 말을 한것은 이번이 열한번째였다. 항상 그랬다. 높은 목소리가 한참이나 오가고 자존심과 오기
그 어디의 무엇인가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할 때쯤이면, 피터는 언제나 그랬다. 지금처럼, 물기에 흠뻑 젖은 속눈썹을 깜박이며.
손등 위로 투둑투둑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헤어져요, 라고.
싸움의 시작은 사소했다. 언제나처럼, 별것 아닌 것들이 일으킨 작은 마찰이 자존심이라는 연료를 만나 불꽃으로 타올랐을 뿐이었다.
한참동안 서로에게 모진 소리를 했다. 그때쯤 되면, 처음 계기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기 마련이다. 피터가 분을 못 이겨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졌을 때, 맷은 그것에 화를 내면서도 본인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러고나면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온다. 피터는
이제 차오르기 시작하는 눈물을 닦을 여력도 없이 그저 꺼지지 않은 불씨를 끌어안은 채 앉아있었다. 맷도 자신이 내뱉은 단어의
아픔을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피터가 무어라 말할지 바라보기만 했다. 이때쯤이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비극인지를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언제나 말하는 것은 피터다. 맷은 단 한번도.. 단, 한번도 말한적이 없었다.
그러니 피터는 모른다. 홧김에라도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그래서, 맷은 피터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지 깨닫는다.
피터는 잘 웃고 잘 떠들었다. 쉴새없이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지겨울법도 한데 지겹지가 않았다. 문득문득 터지는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
무작정 찾아간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피터는 웃으면서 놀렸다. 우리 변호사님, 할 일 없어요? 그러면 언제고 맷은 지지 않고
대꾸했다. 내 할 일이 너야. 그러면 피터는 또다시 웃곤 했다. 그게 사랑스러워서 손을 잡았고, 그러자 웃음 대신 홍조가 얼굴에
떠오르는게 사랑스러워서 키스를 했다. 아마도, 그것이 시작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체온과 냄새와 맥박의 리듬. 어느새 그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들의 시작. 그러므로-
그는 단 한 순간도 피터가 없는 생을 상상할 수 없는데 피터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것이 맷을 숨막히게 한다.
그러나 맷은 이제 그 사실에 화내거나 절망하는 대신 그저 가만히 피터의 손을 붙잡는다. 아니,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난 여전히 널 좋아하니까.
그저 한숨처럼, 고백할 뿐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이제는 몸에 익은 버릇같은, 익숙해진 말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쓴 짧은 글. 트친 분의 리퀘로 쓴 거였습니다. 한동안 원고 때문에 계속 장편만 쓰다가 짧은걸 쓰니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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