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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 30제 27. 너의 세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츠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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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 30제 27. 너의 세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츠쿈

DayaCat 2013. 7. 6. 11:36

27.お前の世界 너의 세계

이츠XkyonX이츠 from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그는 나와 다르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와 나는 당연히 똑같을 수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억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나와 똑같을 수 없다. 만약 도플갱어라는 게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녀석과 나의 살아온 과정은 일치하지 않을거고 겪어온 사람들도 다를테니 똑같다고는 결코 말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유일성은 결코 언제나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 아니,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게 아니다. 나도 그 녀석의 영향을 받았나 보다. 좀 있으면 그럴듯한 심리학적 지식을 동원해대서 언뜻 들으면 유식해보이는 추리를 해댈지도 모른다. ...그건 좀 싫군.

하여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는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그는 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거다. 물론 그 녀석 역시 (비교적)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녀석이고 내 주위에는 특별한 인간이 어쩌다 보니 많아졌기에 그러한 이질감을 느낄 기회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이따금 찾아오는, 지독한 위화감. 분명 같은 장소에 있는데 같이 있지 않는 듯한 느낌. 왠지 그 녀석만 다른 공간에 속한 듯한, 속내를 도저히 알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멀찍이 떨어져있는 듯한, 그런 괴상한 위화감. 그건 항상 찾아오는 게 아니다. 어쩌다 한번, 예를 들어 하루히가 멋대로 내 목에 헤드락을 걸어대고 미쿠루 선배는 어쩔줄 몰라하고 나가토는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는, 그런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그 녀석은 혼자 그 공기 속을 일탈해 가만히 서 있다. 예의 안개같은 미소를 시종일관 띄면서.

하지만 난 처음엔 그런 걸 별로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느낌은 기묘하게 내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하도 하루히가 차대는 통에 경첩이 삐걱대는 문예부실 문을 느릿하게 열었다. 주황빛 오후의 햇살이 얼굴로 쏟아져 들어와 눈을 찌푸렸다. 덕분에 창문을 등지고 서있어 어두컴컴한 형체로 보이는 코이즈미를 알아보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의자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은 다음 내가 하루히랑 나가토랑 미쿠루 선배는 어딨냐고 묻기도 전에 코이즈미가 날 보더니 말해주었다.

"하루히 씨는 학생회에 갔습니다. 오늘은 반드시 학생회장과 결판을 내겠다냐요? 미쿠루 씨와 나가토 씨는 지원요원으로 같이 갔습니다."

가긴 뭘 가. 보나마나 끌려갔겠지. 안 봐도 뻔할 뻔자다. 나는 내 식도와 위장을 촉촉하게 적셔줄 아름다운 미소녀 메이드가 없는 것에 한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코이즈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웬일로 코이즈미는 내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저 팔짱을 낀 채 창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늘상 짓는 미소도 희미한 기색만을 남긴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는 시선.

....또다. 금방이라도 다른 곳으로 가버릴 듯한 저 모습. 혼자, 머얼리 어딘지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버리기라도 할 듯한 느낌. 언제부터였던가, 저 모습을 보면 가슴 한켠이 묵직한 느낌이 든다.

정말로, 불쾌하다.

코이즈미가 그제서야 내 시선을 느끼고 순식간에 상큼스마일을 만들어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뭘 그리 보느냐고 묻는 저 뻔뻔스런 얼굴엔 아까의 기색은 온데간데 없다. 왠지 불퉁스러운 기분이 되어버린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별 거 없어. 너야말로 할 일 없냐?'

"글쎄요. 그러고보니 확실히 요즘 할일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다 당신 덕분입니다. 요즘 하루히 씨의 정신상태가 많이 안정되었거든요."

아, 그 회색세계와 신인이라고 불리는 거인 이야기구나. 나는 어느덧 나가토의 무표정만큼이나 잘 알게 된 코이즈미의 미소띈 얼굴에 살짝 기쁨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고 보니, 한번도 코이즈미의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다. 그곳을 한번 갔다오기까지 했는데도. 나는 정말로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코이즈미에게 질문했다.

"그러고보니, 거긴 어때? 그- 회색세계 말이야. 신인이랑."

코이즈미는 내 질문에 미소를, 그러나 분명 씁쓸하게 보이는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에게선 난생 처음 보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는 곧 당황한 내 모습에 재빨리 표정을 바꿨다. 예의 그 미소로. 그러나 여전히 눈빛은... 또다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코이즈미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와 똑같습니다. 당신도 갔다와보셨잖습니까? 모습은 똑같습니다만 아무도 없고, 색깔도 없고. 색깔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란 오직 그 신인뿐이죠."

그의 말에 내 머릿속은 자동적으로 그 무섭도록 황량한 세상을 떠올렸다. 말 그대로, 무채색의 세계속에 빛나는 파란 거인들. 결코 보기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코이즈미는 내가 듣든지 말든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저절로 미치게 되죠. '기관'의 초창기에는 어쩌다가 거기 너무 오래 갇히게 되어 미치게 된 이를 구출해낸 사례도 있었습니다."

말문이 막혀 나는 코이즈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예의 그 미소로,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그 내용이 코이즈미에게는 현실이겠지. 언제나 마주하는 일상이겠지.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묵직하게 무언가 짓누르는 느낌. 나는 간신히, 억지로 쥐어짜낸 목소리로 생각나는 아무 질문이나 내뱉었다.

"그... 그럼, 너는 그곳에 오래 있어본 적 있어?"

코이즈미는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좀더 오래,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지친 미소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게 제 일입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아니 원인을. 그 회색세계. 나로선 딱 한번 경험해봤을 뿐인, 무섭도록 황량하고 지독하게 외로운 세계. 언제나 그 세계에 가야하는, 그리고 머물러야만 하는 인간이, 결코 나와, 그리고 다른 평범한 이들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살아가는 세계 자체가 다른 것이다.

"괜찮습니다."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코이즈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우린 이렇게 있으니까요."

어느새 코이즈미에게 잡힌 내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코이즈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웃고 있었다.

 

평행선처럼, 결코 만날 일 없는 너와 나의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온기가 마치 두 세계의, 너와 나의 접점이라도 된 듯한, 그런 느낌에 나도 모르게 같이 미소짓고 말았다.

 

역시나 고등학교 때 썼던 글. 한창 이츠쿈하고 쿈코를 좋아할 때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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