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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 30제 12. 너에게로 가는 길 - [은혼]오키히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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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 30제 12. 너에게로 가는 길 - [은혼]오키히지

DayaCat 2013. 7. 4. 17:39

12.貴方に行く道
너에게로 가는 길

 

지금은 여름이었다.

샛노란 오후 2시의 햇살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후끈후끈하게 햇빛에 데워진 공기는 달뜬 숨을 들이쉴 때마다 호흡을 방해했다. 끈적끈적하게 땀에 젖어 머리카락이 자꾸 달라붙는 이마에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더워.

 내가 맨 처음 내뱉은 한마디였다.

 정말로 덥고 덥고 또 더워서 정신이 금방이라도 나가버릴듯, 시야가 몽롱해진다. 이대로 있다간 어디선가 나풀나풀 신기루라도 보일 것만 같아서, 다시 한번 축축 처지는 몸을 애써 옮긴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중얼거렸다.

 -더워.

 여름이 싫다던 그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오늘 아침만 해도 그는 매우 기분이 좋아보였다. 대원들의 아침훈련-나야 그때도 땡땡이 치고 있었지만서도-에도 유달리 기운차게 목검을 휘두르며 우렁차게 소리를 내질렀었다. 

 -정신차려, 이 자식들! 자세가 이 모양이어서야 되겠냐!

 물론 간밤 끔찍한 열대야에 실린 대원들은 신새벽부터 일어나서 목검을 휘두르는 중노동을 하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고 당연하게도 그들의 자세는 소리를 백날 질러봐야 흐물흐물할 뿐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당연히 대원들의 허리를 내려쳐서라도 허리를 꼿꼿이 펴게 만들었을 텐데, 여느때와는 달리 슬쩍 입가에 머무른 그의 미소는 전혀 변하질 않았더랬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 안하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혹시 약이라도 한겁니까? 이 중독자 히지카타야.

 -소우고. 망할 자식아. 오늘도 네놈 싸가지는 여전히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구나.

 -원래 내 싸가지야 착불로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걸 알면서 그러시네. 바보 히지카타야.

 -...너 자꾸 뒤에 은근슬쩍 내 욕할래?

 그렇게 평소와 똑같이 타박을 주면서도 여전히 입가에서, 눈매에서 떠날 생각을 않는 그의 미소에 나는 어떤 의미로는 화까지 나서, 도대체 당신의 기분을 그렇게 좋게 만들 수 있는게 뭔지 도대체 짐작도 안 간다는게 너무 화가 나서, 결국엔 히지카타의 머리에 모래를 뿌려 그 미소가 일그러지게 만들어버렸었다.

그리고 오늘, 여름의 햇빛이 미치도록 짱짱한 오늘, 오후 2시 점심 때 순찰 당번에 걸려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과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한숨을 쉬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건 나뿐이었고 그때 보인 당신의 옆얼굴은 말못할 비밀스런 기쁨에 살짝 들떠있는 것같아서- 정말로 기분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정말로 기분이 나빠서- 난 지금 이렇게 순찰을 도는데도, 이렇게 날씨는 끔찍하게 더워서 돌아버릴 것만 같은데도, 망할 놈의 이 신센구미 제복은 여름용이라는 개념자체를 싸그리 지워버린 옷이라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 열기가 차오르는 데도, 머릿속은 당신 생각으로 가득차버려서, 사실 날 미치게 만드는 건 더위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혹시 오늘 형씨를 만나나? 망할, 정말로 그런거였다간 그놈의 형씨를 회떠서 포로 만들어버릴테다. 아니면 곤도씨와의 약속? 곤도씨는 근데 맨날 보잖아. .....설마 이건 절대 아니겠지만, 진짜로 아니겠지만, 정말로 만에 하나, 차이나걸이나 형수님을 만나.....진 않겠지. 아무렴. 그래도 히지카타 씨인데.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상상이 어느샌가 여름날의 몽롱함과 몽클몽클 섞여서 더이상은 내가 주체할 수 없는 곳으로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히지카타 씨는 입에서 불을 뿜진 않을거라고. 잠깐만. 히지카타 씨는 마요라 제트가 되지도 않을 거라고. 그 사람은 신센구미 하나를 지키기도 벅찬데 지구까지 지키게 하면 그 사람 탈진할 게 분명하단 말이지.

점점 더 상상은 비현실적으로 부풀어오르고, 마침내 내가 꿈을 꾸는 지 아닌 지 조차도 분간하기 어려워질 때, 정확히는 히지카타 씨가 무적의 프리고로타 레슬링 가면을 쓸려고 할때쯤에- 나는 결심했다.

 역시 그를 보러 가자. 

 

 

 

 

처음 몇발은 제법 뛰었다. 하지만 곧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굳이 뛰어서 수분과 체력을 동시에 소비할 수는 없다는, 정확히는 그러기에는 이미 무리인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는 대신 빨리 걷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돼서 위가 요동치는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어딨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쉽게 찾아지리라는 것.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이고, 놀랍게도 스스로는 전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가 갈 곳에 아마도 그가 있을 것이다. 뭐, 정 안되면 물어보면 된다. 시꺼먼 옷을 입고 담배를 문 시꺼먼 남자 못봤냐고. 모두들 내 제복을 보면 친절히 답해주겠지.

 

 

 -여어- 소이치로 군!

 특유의, 맥빠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해결사 형씨가 나무 그늘진 계단에 앉아 쭈쭈바를 쭉쭉 빨아먹고 있었다. 나는 형씨 쪽으로 걸어갔다. 형씨 쪽은 나른나른한 목소리로 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익후 이 땡볕에 고생들 하십니다 그려~

 -닥치고 불으시지요.

 -뭘?

 -히지카타 씨 못 봤습니까?

 -엉? 그 칙칙한 경찰 아저씨? 어디 보자아~

 형씨는 한참을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다가, 쭈쭈바를 쭉쭉쭉 들이마시다가, 그러다 다시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다가, 마침내 내가 검을 스릉 뽑으려 할때쯤 황급히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말해줄게말해줄게!! 빠찡코에서 나오다가 봤어. 가부키쵸 쪽으로 걸어가던데, 나도 말을 걸랬는데 못 들었는지 계속 가더라고. 기분 엄청 좋아보이던데, 그녀석 무슨 좋은 일 있었어?

 -그걸 알아보려 가는 겁니다.

 나는 검을 도로 집어넣고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나는 뒤에서 '응? 그게 뭔 소리야? 좀 나도 갈켜줘 소이치로군~'하는 형씨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해주고 최대한 빨리 걷기 시작했다.

 

 

-니야옹~

 가느다란 고양이 목소리에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소리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부키쵸의 깊숙한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코딱지만한 풀숲이 보이는 깊고 깊숙한 작은 주인없는 정원, 이라기에도 뭣한 곳,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나도, 그리고 그도 알고 있었다. 나야 기껏해야 저번에 우연히 가보고 처음 가는 거지만- 야트막한 관목 사이로 보이는 검은 옷자락. 검은 머리카락. 뭉클뭉클 실타래처럼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알아보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알아채고 미친 듯이 뛰었다.

 그가 누워있었다. 나무그늘 아래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입가에는 담배를 물고, 손에는 고양이들 간식인지 멸치가 들려있었다. 주위에는 작은 주황빛 호랑의 줄무늬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멸치를 툭툭 발로 치다가 간간이 물어뜯었다. 

 -히지카타 씨-

 내 부름에 그는 가느다랗게 감았던 눈을 떴다.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며 후다다닥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뭐야, 소우고냐?

 -히지카타 씨. 웬 고양이입니까?

 히지카타는 내 물음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관목 사이로 숨어버린 고양이에게 멸치를 던져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 응. 며칠 전부터 여기 살기 시작한 것 같더라고. 어제 간신히 친해지는 데 성공했지. 

 -.....그래서 멸치까지 챙겨온겁니까?

 -일종의 자릿세지. 나도 여길 써야되고. 이 녀석도 여길 써야 되고. 서로 친해두는 편이 일단은 좋으니까.

 나는 피식, 하고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아무리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이는 당신이라도, 조금은 물러질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거겠지. 나는 관목을 헤치고 그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럼 순찰도 땡땡이 치고 여기 온겁니까?

 -...아냐!! 난 빨리 끝내고 온거다!

네네, 그러시겠죠. 하고 나는 피식피식 비웃으며 답변해주었다. 그는 조금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누웠다. 나는 나무잎 사이로 조각조각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에게 말했다.

-그러면 말이죠, 곤도 씨한테 땡땡이 친 거 말 안할테니까 부탁하나만 들어줘요.

-무슨 부탁?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나도 여기 같이 쓰게 해주기.

-....자릿세만 낸다면.

-네네, 멸치야 얼마든지 내죠.

나는 키들키들 웃으며 대답하고는 그대로 그를 따라 벌러덩 옆에 누웠다. 시원한 바람이 볼을 간지럽혔다. 풀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바람에 실렸다. 낯선 나의 존재에 숨죽이고 있던 고양이가 내 눈치를 보며 슬슬 기어나왔다. 곧 그 고양이는 천천히 내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여긴 우리 둘만의... 아니지. 셋만의 장소로 정하는 건가요?

-...뭐 하고 싶으면 맘대로...

-냐옹~

 

 

고등학교 때 썼던 글. 한창 은혼 좋아할 때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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