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글연성/DC (25)
A.Y.A.D.
너에게 키스했다. 메마르고 버석이는 입술이었다. 너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흔들리는 시선을 다시 내리깔았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너의 까만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어 빛을 반사했다. 나는 다시 한번 너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는 피하지 않았다. 언젠가 함께 보았던 밤바다처럼, 깊고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네가 입술을 연다. 나는 그 모든 너의 움직임을 눈으로 집요하게 좇는다. -너는 항상 새벽과 함께 왔었지. 너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게 울린다. 그다지 높지 않은 허스키한 음색 가운데 언듯 소년의 흔적이 스쳐가곤 하는 너의 목소리를 나는 항상 좋아했었다. 맞아, 나는 그랬었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새벽은 너의 체온과 맞닿아 흘러갔다. 너의 체온은 나의 것보다 조금 ..
"맛있어?"팀의 목소리에 제이슨이 고개를 들었다. 팀은 식탁 위로 고개를 괸 채 제이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샐러드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제이슨은 먹던 빵을 내려 놓고 퉁명스럽게 물었다."너는 왜 안 먹냐?""그냥, 입맛이 없어서.""그럼 시키지를 말 것이지. 하여간에 부자놈들은 안된다니까."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너랑 밥먹는거."제이슨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빵을 다시 집어드는 폼이 진심인 것 같지는 않았다. 팀은 쓰게 웃었다. 예전엔 제이슨이 이런 사람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제이슨은 팀의 미소를 무어라 해석한건지 뭔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 도대체 뭣 때문에 날 부른거야?""친..
-내 로빈이 돼라, 토드. -하? 제이슨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평소와 똑같은 밤이었다. 레드후드로서의 활동을 마치고 세이프 하우스로 돌아가려는 길목이었다. 일찌감치 브루스하고 뱃케이브로 돌아간 줄 알았던 데미안이 불쑥 제이슨의 앞에 나타나서 다짜고짜 설명도 없이 헛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한 데미안은 당당한 얼굴로, 언제나 그랬듯이 목을 꼿꼿이 든 채 다시 한 번 똑같은 말을 또박또박 반복했다. -내 로빈이 되라고. -무슨 그게 브루스 농담따먹기 하는 소리야? 제이슨의 표정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는 집어치우라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아까보다 좀더 찡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조금만 더 성질을 건드리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신호였다...
제이슨은 연미복의 보타이가 불편한지 자꾸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데미안이 그런 제이슨에게 이런 옷 처음 입어 보냐? 하고 이죽거리자 딕이 그의 머리를 꽁하고 꿀밤을 한대 때렸다. 평소라면 제이슨도 인상을 쓰며 어디서 꼬맹이가 기어오르냐고 살벌하게 대꾸했겠지만 지금 그는 그런데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는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한테 말이라도 걸까봐 잔뜩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빛이 은식기에서 반사되어 반짝였다. 참석한 손님들은 물론이거니와 돌아다니는 급사들의 모습까지 고급스럽고 우아해보였다. 작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이 파티장 내에 마치 향기처럼 떠돌았다. 웨인 기업이 주최하는 자선 파티이니 이 정도 수준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제이슨은 이 모든 게 낯설었다. 딕이나 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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