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연성/마블

[토니피터]어느 날 오후

DayaCat 2014. 5. 11. 23:48

소년의 머리카락은 연한 갈색이었다. 오후의 햇살 속에서, 유달리 따스한 질감으로 빛나는 그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넣어 헤집고 싶은 충동을, 토니는 한참동안 참고는 했다. 그러면 소년은 마찬가지로 햇빛에 노랗게 물든 갈색 속눈썹을 깜박이며, 그 연하고 투명한 눈동자로 토니를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봐요, 보스?

토니는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것에 익숙한 남자였고, 머리 회전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남자였음에도 그 순간에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다만, 자신의 눈을 말끄러미 바라보는 투명한, 햇살 속에서 호박처럼 빛나는, 그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살짝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소년은 만만찮은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곧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수상하다는 듯이 살짝 인상을 썼다. 흐음, 이상한걸요... 그 순간 소년의 콧잔등 위로 만들어지는 주름마저, 사랑스러워 보여서 토니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길 바라며 내뱉었다.

그냥, 너도 참 어린애다 싶어서.

하, 참나, 누가 어린애라는 거죠? 저도 벌써 서른이 다 되어가거든요? 보스가 늙은 거라는 생각은 안해요? 늙수그레하게 수염이나 길러서 말이야, 누가 보면 진짜 아버지랑 아들처럼 보이는 건 내탓이 아니라 보스가 늙어보이는 탓이라구요.

그새 샐쭉해져서 볼멘 얼굴로 피터는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피터의 말대로, 그는 더이상 소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웃을 때마다 옴폭하게 패이는 볼우물이라든가, 갈색 눈썹이 찌푸려질때마다 만들어지는 주름의 모양새라든가, 그 모든 것들이 처음 만났던 소년의 모습 그대로여서, 토니는 문득문득 그 사이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말이에요, 보스, 그 수염 좀 밀어버려요! 도대체가 말이야, 부자로 오인받는 것도 한두번이어야지.

그게 싫어?

아, 그럼 뭐가 좋겠어요! 보스는 저만한 아이가 있다는 소리 듣는 게 싫지도 않아요?

안 싫은데.

토니의 말에 피터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하지만 곧 그 동그란 갈색 눈동자가 가늘어지더니 천천히 토니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수상하다는 듯이 탐색하는 눈길에, 토니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너도 날 대디라고 부르잖아. 토니의 말에 피터가 곧 볼을 부풀리며 대답했다. 그거야 그냥 장난이고요. 토니는 싱긋 웃었다. 저러는 주제에 어른이라고 우기긴. 하지만 토니는 굳이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피터는 또 자기는 어른이며 더이상의 어린애 취급은 사양한다고 5분간은 족히 떠들어댈테니까. 사실 토니는 피터의 수다를 듣는 걸 꽤 좋아했지만-한번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어도- 지금은 좀더 다른 걸 하고 싶었다. 토니는 가만히 손을 뻗어, 피터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거칠거칠한 손바닥 위로 맞닿는 부드러운 감촉이 간질간질했다. 피터의 체온은 유달리 따스해 토니의 피부로 온기가 흘러들어와 심장을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피터는 얼굴을 토니한테 붙잡힌 채, 눈을 다시금 동그랗게 떴다. 연한, 호박색 눈동자. 깜박일때마다 햇살을 반사하는 속눈썹. 그 모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토니는 싱긋 웃었다.

난 너라면 꽤 괜찮다고 생각해.

그 순간, 피터의 얼굴 위로 붉은 열기가 밀려들어오는 것을 토니는 보았다. 볼과, 눈밑으로 홍조가 피어오르는 그 순간 토니의 손에 맞닿은 부분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피터는 토니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진짜, 방금 전엔 넘어갈뻔 했어요. 역시 바람둥이네요, 토니.

좀 전의 열기는 어느새 썰물처럼 밀려나가 사라진 얼굴로, 피터는 토니의 눈을 마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거, 여자들한테 자주 써먹는 수법이죠? 나도 나중에 써먹어봐야지. 또다시 떠들기 시작하는 피터를 보며, 토니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걸로 충분하지. 그는 곧 피터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느긋하게 대꾸하기 시작했다.

너는 배우지도 못할걸. 있는 여자나 잘챙겨, 피터.

우와, 그런 말을 하다니 실망이에요, 보스. 제가 이래봬도 연애경력은 어디 가서 안 지거든요? 한번 읊어볼까요? 그웬, 메리제인, 펠리시아......

토니는 피터가 열거하기 시작하는 여자의 이름을 한귀로 들으며, 자세를 비스듬히 고쳐 앉았다. 햇빛은 따스하고, 공기는 연한 색으로 물들어 절로 미소짓게 되는, 어느 나른한 오후였다.



일 끝나고 좀 기분전환할 겸 리퀘받아서 쓴 토니피터. 토니피터 좋아요. 특히나 토니가 아닌 척 해도 피터를 무지 좋아하는 게 좋네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