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연성/마블

[토니피터]침묵과 이야기

DayaCat 2014. 7. 7. 22:49

토니피터의 소재 멘트는 '이제는 털어놓아도 괜찮잖아?', 키워드는 농담쟁이.
어질거리는 느낌



 보통 사람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토니와 피터는 일할 때는 거의 말이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토니는 결코 과묵한 남자는 아니었고, 피터 역시 그 수다로 주위 사람들을 질리게 만든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토니와 피터가 함께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타샤는 그 매혹적인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던 것이다. 연구실이 아주 시끌시끌하겠네, 라고. 나타샤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말한 바와는 정반대로, 연구실은 아주 조용했다. 이따금 파삭거리는 스파크 소리와, 아무리 하이 테크놀로지라고 해도 채 없애지 못한 웅웅거리는 기계음만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토니는 이따금 피터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럼 피터는 말없이 토니가 원하는 전자 칩이나 드라이버 따위를 건네주었다.

 간혹 둘이 함께 한 화면을 계속해서 뚫어져라 쳐다볼 때도 있었다. 빙글빙글 한 자리를 도는 수식의 미로 속에서 그들은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 한참을 함께 서서 노려보았다.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몇번의 눈짓, 몇번의 끄덕임. 이따금 터지는 나직한 탄성. 그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전부였다.




 그날도 익숙한 고요 속에서 그들은 함께 일하고 있었다. 토니가 한창 작업 중이던 기계는 이제 제 모습을 어느정도 갖춰가고 있었다. 몇 개의 수식, 찰나의 번득임에서 출발했던 것들이 어느새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손끝에 그 감각을 전달하는 순간. 토니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그리고 토니는 예상보다 훨씬 단축된 작업시간에 만족해하며, 피터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이정도까지 할까?" 피터가 토니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명백히 토니의 말을 놓친 듯한 당황한 눈빛에 토니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오늘은 이정도까지 할까, 라고 했어. 피터, 왜 그래?" 토니의 말에 피터는 뒷머리를 살짝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냥, 피곤해서요." 그렇게 말하는 피터의 목소리는 푸석거렸고 생기가 없었다. 토니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는 성큼성큼 피터에게 다가갔다. 피터가 동그란 갈색 눈동자로 토니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래요, 보스?" 토니는 대답하는 대신 커다란 손을 피터의 이마 위에 댔다. 거칠거칠한 손의 아래로, 이마의 체온이 느껴졌다. 토니는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너 열 나는데."
 "아..."

 피터가 입술을 벌리고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토니의 말대로 피터의 얼굴에는 발그스름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피터는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별 거 아니에요." "뭐가 별거 아냐. 열이 펄펄 끓는데. 이 상태로 지금껏 일했단 말야? 맙소사, 내가 악덕 고용주가 된 기분이군. 자비스한테 말해둘 테니 한숨 푹 자고 가." 토니는 피터의 손을 잡고 무작정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피터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집에 갈게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참나, 집에 가봤자 어차피 혼자라서 돌봐줄 사람도 없잖아. 여긴 자비스도 있으니까 훨씬 나아." 토니는 피터의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터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피터는 정말 괜찮은데....라고 무안한듯 중얼거리면서도, 차마 그 잡힌 손을 빼지는 못하고 토니에게 이끌려 나갔다.




"38도. 네가 아무리 그 잘난 메타휴먼이어도 오늘은 얌전히 침대에서 치킨 수프나 마셔야 될거다."

 토니는 좀전까지 피터의 입안에 물려있던 체온계를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피터는 몽롱한 눈동자로 체온계의 숫자를 바라보았다. 깜박거리는 38, 이라는 숫자가 열 때문인가 낯설게 느껴졌다. 피터는 지나치게 크고 푹신한 토니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정확히는 토니의 손님용 침실에 위치한 침대였지만, 누가 부자 아니랄까봐 손님용 침대도 지나치게 컸다. 피터는 발그스름해진 얼굴로 작은 불평을 내뱉었다. 

"이 침대, 너무 커서 오히려 불안한데요. 안정감이 없잖아요.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아요."
"네 코딱지만한 침대에서는 자다가 굴러떨어질 수도 있을텐데? 그건 불안하지는 않고?"
"저는 가만히 누워서 잘 자거든요. 사실 시체 수준이죠. 너무 잘 자서 아침에 못 일어나는게 문제지."
"그러면 여기서도 잘 자겠네."

 토니의 마지막 말에 피터가 배시싯 웃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떠오른 미소가 꼭 어린 소년 같았다. 토니는 이따금 그럴 때면 오히려 피터의 나이를, 그가 성인이 된지 한참 지났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하게 되곤 했다. 토니도 피터 옆에 앉아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그런데 메타휴먼이면 감기같은 건 안 걸리는 것 아니야? 얼음찜질이라도 한거야 뭐야."
"아무래도 어제 밖에서 자서 그런가봐요. 날이 이제 제법 따뜻해졌는데도 밤은 아직 춥더라구요."

 피터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대답했다. 목소리는 열에 들떠 나른하고 중얼거리는 듯 했다. 토니가 피터의 대답에 화들짝 놀라 몸을 피터 쪽으로 돌렸다. "설마 노숙한거야? 너 이제 집도 있잖아. 왜 그런거야?" 토니의 말에 피터가 음.. 하고 잠시 말을 흐렸다. 무어라 그럴듯하게 말하고 싶은데, 눈꺼풀이 자꾸 감겼다. 누워있는데도 머리는 열때문에 어질어질하다 못해 팽글팽글 도는 것 같았다. 피터는 결국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웬의 기일이었어요."

 토니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그의 눈동자가 피터를 말끄러미 향했다. 피터의 갈색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가 멈췄다. 가라앉다 못해 흐릿하게 끝이 번지는 목소리였다.

"묘지에 갔는데, 꽃만 놔두고 올수가 없어서, 계속 있다가....그렇게, 시간이 가버리고, 깜박 잠들어버렸어요."

 피터는 이제 눈을 감고 있었다. 토니는 말이 없었다. 피터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알잖아요. 어떻게, 제가 그웬을... 그렇게 내버려두고 올 수 있겠어요..." 마치 잠꼬대인 것처럼, 헛소리인 것처럼 힘없이 흩어지는 목소리. 토니는 가만히 피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터의 얼굴은 평온하리만치 변화가 없었다. 그저 꼭 감은 눈 아래로,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맞춰 가슴이 부풀었다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토니는 천천히 손을 피터의 손 근처로 뻗었다. 손가락 끝이 피터의 피부에 닿았다. 뜨거운 피터의 체온이 와닿는 그 순간, 토니는 손을 뗐다. 그대신 그는 피터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얗고 동그란 이마에 갈색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달라붙어있었다. 토니는 그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피터는 서늘하고 거친 손의 감촉에 눈을 가늘게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토니의 얼굴이 보일듯 보이지 않았다. 결국 피터는 다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이야기,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았는데..." 토니의 목소리가 피터의 귓가에 들려왔다. "뭐 어때. 이젠 털어놓아도 괜찮잖아? 너랑 나랑 알고 지낸 지가 몇년인데." 태평하고 쾌활한 목소리. 언제나처럼. 피터는 다시 한번 엷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토니." 토니의 손이 다시 한번 피터의 갈색 머리카락을 헤집듯이 쓰다듬었다. 몸 전체에 가득차 일렁이는 열기 속에서, 토니의 손은 서늘해서 기분이 좋았다. 피터는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하는 잠의 기운 속에서, 토니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도, 토니. 전 당신하고는 말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피터는 이제 잠들어 있었다. 꼭 감은 두 눈과 살짝 벌려진 입술. 그리고 규칙적인 숨소리와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가슴의 움직임. 토니는 다시 한번 피터의 이마를 쓸어주고서는 일어섰다. 그는 걸음을 떼려다가, 잠시 멈추어서서 피터를 돌아보았다.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대답했다.

"나도 그래,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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